영일(迎日) 정씨라고도 쓴다. 고려 추밀원지주사 정습명의 후손이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가 이 집안 사람이다.
정몽주 鄭夢周
1337~1392 · 고려 말 · 문신
두 왕조 사이의 다리 위에서 고려를 택하다
정몽주의 실제 일생
정몽주(1337~1392)는 영천에서 태어나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1363년 한방신의 종사관으로 이성계와 함께 여진 정벌에 나섰고, 1372년 명나라 사행길에 배가 부서져 열사흘을 표류한 끝에 살아 돌아왔다. 이인임 정권의 친원 외교에 반대하다 언양으로 귀양 갔고, 풀려난 뒤 일본 규슈에 사신으로 가서 붙잡혀 간 고려 백성 수백 명을 데려왔다. 1389년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웠고 이듬해 수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이성계 세력이 새 왕조로 나아가자 이를 막으려 했다. 1392년 이성계를 문병하고 돌아오던 길에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에게 살해되었다. 1401년 태종이 그를 영의정부사로 추증했고, 1517년 문묘에 배향되었다.
정철(1536~1593)은 연일 정씨 돈녕부판관 정유침의 아들로 서울 장의동에서 태어났다. 누이들이 인종의 후궁과 계림군의 부인이어서 어려서 대궐을 드나들며 경원대군(명종)과 가까웠으나,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아버지가 귀양 가고 맏형은 매를 맞고 귀양 가던 길에 죽었다. 담양 창평에서 임억령·김인후·송순·기대승 등에게 배워 1562년 별시 문과에 장원했다. 서인에 서서 동인과 거듭 부딪혔고, 강원도관찰사 때 「관동별곡」과 「훈민가」를, 창평에 물러나 「사미인곡」「속미인곡」을 지었다. 1589년 정여립 사건 때 우의정으로 옥사를 맡아 동인을 가혹하게 다스렸다는 원성을 샀다. 1591년 세자 책봉 문제로 파직되어 강계에 위리안치되었고, 임진왜란 때 풀려나 체찰사와 사은사를 지냈으나 동인의 탄핵으로 물러나 1593년 12월 강화 송정촌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누이들 덕에 어려서 대궐을 드나들며 훗날의 명종과 동무로 자랐다. 열 살에 을사사화로 집안이 무너졌고, 두 해 뒤 맏형은 매를 맞고 귀양 가던 길에 죽었다. 자라서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을 지은 시인이 되었고, 조선에서 가장 큰 옥사의 재판장이 되었다. 그 붓을 어디에 쓸지는 당신이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