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남씨 英陽 南氏

옛 경상도 영양오늘의 경상북도 영양군

경북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집안.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린 남자현이 이 집안 사람이다.

남자현 南慈賢

1872~1933 · 일제강점기 · 독립운동가

마흔일곱에 만주로 간 며느리,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의 실제 일생

남자현(1872~1933)은 경상도에서 남정한의 딸로 태어났다(안동에서 났다는 기록과, 영양 사람이라는 공훈록 기록이 있다). 본관은 영양이다. 열아홉에 영양 석보의 김영주에게 시집갔는데, 남편은 을미사변 뒤 의병으로 나섰다가 전사했다(1896년이라 전한다). 그 뒤 유복자 김성삼을 기르며 시부모를 모셨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3월 9일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했고, 동만주 12곳에 예배당을,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세웠다. 1925년 채찬·이청산 등과 사이토 총독 처단을 계획하고 서울에 들어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1928년 길림에서 김동삼·안창호 등 47명이 붙잡히자 옥바라지와 석방 운동에 힘썼고, 1932년 9월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손가락을 끊어 쓴 혈서 「韓國獨立願」을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1933년 2월 27일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 처단을 준비하다 하얼빈에서 붙잡혔고, 옥중에서 단식으로 항거하다 위독해져 보석으로 풀려난 뒤 8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남자현」 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2&pageTitle=Merit&mngNo=1693
  2. 위키백과 「남자현」 ko.wikipedia.org/wiki/남자현

경상도 선비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열아홉에 시집갔다. 남편은 을미년 의병으로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그녀는 유복자를 기르며 시부모를 모셨다. 그리고 1919년, 마흔일곱의 나이로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남편이 의병에 나서던 해부터 시작한다.

남자현으로 살아 보기
영양 남씨의 이름난 인물
  • 남자현1872~1933마흔일곱에 만주로 간 며느리, 독립군의 어머니
  • 남사고1509~1571예언으로 이름난 학자

족보로그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