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辛旽
?~1371 · 고려 말 · 승려
노비는 성인이라 불렀고 사관은 요승이라 적었다
영산현의 토성(土姓)인 신(辛)씨. 공민왕의 개혁을 맡았던 승려 편조, 곧 신돈이 이 고을 사람이다. 영산 신씨 족보에는 그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다.
노비는 성인이라 불렀고 사관은 요승이라 적었다
경상도 영산현 사람, 법명은 편조. 왕비를 잃은 공민왕은 그를 "욕심이 없고 미천하여 무리를 짓지 못할 사람"이라 여겨 나랏일을 맡겼다. 빼앗긴 땅과 노비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자 노비들은 그를 성인이라 불렀고, 땅을 내놓은 이들은 요승이라 불렀다. 그 두 말을 함께 적은 『고려사』를 마무리한 것은 고려 다음 왕조의 신하들이었다.
신돈으로 살아 보기한국학중앙연구원 Encyves는 본관을 영산으로 소개합니다. 다만 아버지는 영산에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영산 신씨라는 표기와 선대 계보가 확인되었다는 말은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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