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신씨 靈山 辛氏

옛 경상도 영산오늘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시조 신경(辛鏡)

영산현의 토성(土姓)인 신(辛)씨. 공민왕의 개혁을 맡았던 승려 편조, 곧 신돈이 이 고을 사람이다. 영산 신씨 족보에는 그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다.

신돈 辛旽

?~1371 · 고려 말 · 승려

노비는 성인이라 불렀고 사관은 요승이라 적었다

신돈의 실제 일생

신돈(?~1371)은 경상도 영산현 사람으로, 법명은 편조(遍照), 자는 요공(耀空), 법호는 청한거사(淸閑居士)이다. 어머니가 계성현 옥천사의 노비였다고 전하나, 그가 역적으로 몰린 뒤 비하된 것일 수 있다. 1358년 무렵 김원명의 소개로 공민왕을 만났고, 1365년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뒤 왕의 사부가 되어 최영 등 무장 세력을 밀어내고 진평후·영도첨의사사사·취성부원군이 되었다. 1366년 전민추정도감을 두어 권세가가 빼앗은 땅과 노비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천인이 된 이를 양인으로 풀어 주었으며, 1367년 성균관을 다시 세웠다. 탄핵과 제거 모의가 잇따랐고 명나라도 그를 경계했다. 1370년 공민왕이 친정을 선언했고, 1371년 7월 그는 반역 혐의로 수원에 유배되어 이틀 뒤 처형되었다. 『고려사』는 그를 반역전에 실었고, 조선 건국 세력은 우왕과 창왕을 그의 자손이라 하여 왕씨가 아니라고 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돈」 encykorea.aks.ac.kr/Article/E0032783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민왕」 encykorea.aks.ac.kr/Article/E0004295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민변정도감」 encykorea.aks.ac.kr/Article/E0049408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왕」 encykorea.aks.ac.kr/Article/E0040045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원명」 encykorea.aks.ac.kr/Article/E0010031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공권」 encykorea.aks.ac.kr/Article/E0049938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석탄집」(이존오) encykorea.aks.ac.kr/Article/E0028557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사」 encykorea.aks.ac.kr/Article/E0003456
  9. 위키백과 「신돈」 ko.wikipedia.org/wiki/신돈
  10. 위키백과 「이존오」 ko.wikipedia.org/wiki/이존오
  11. 태조실록 총서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우다」 db.itkc.or.kr/dir/node?dataId=ITKC_JT_A0_000_000_000_01000

경상도 영산현 사람, 법명은 편조. 왕비를 잃은 공민왕은 그를 "욕심이 없고 미천하여 무리를 짓지 못할 사람"이라 여겨 나랏일을 맡겼다. 빼앗긴 땅과 노비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자 노비들은 그를 성인이라 불렀고, 땅을 내놓은 이들은 요승이라 불렀다. 그 두 말을 함께 적은 『고려사』를 마무리한 것은 고려 다음 왕조의 신하들이었다.

신돈으로 살아 보기
영산 신씨의 이름난 인물
  • 신돈?~1371공민왕의 개혁 승려
    영산 본관과 알려지지 않은 선대

    한국학중앙연구원 Encyves는 본관을 영산으로 소개합니다. 다만 아버지는 영산에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영산 신씨라는 표기와 선대 계보가 확인되었다는 말은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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