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朴堤上
생몰년 미상 · 삼국시대 · 문신
왕의 두 아우를 구하러 고구려와 왜로 간 신하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을 시조로 받드는 집안. 관향 영해는 동해에 닿은 경북 영덕의 옛 고을이다.
왕의 두 아우를 구하러 고구려와 왜로 간 신하
신라 삽량(지금의 양산) 땅의 간(干). 눌지왕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간 두 아우를 밤낮으로 그리워했고, 세 촌장이 입을 모아 그를 천거했다. 고구려에서는 말로, 왜에서는 꾀로 두 왕자를 데려와야 한다. 돌아올 배는 한 척뿐이다.
박제상으로 살아 보기조선공산당의 지도자, 북에서 처형되다
충청도 예산의 쌀장수 집 서자로 태어나 영어를 공부하던 청년은 상해에서 공산주의를 만나 조선공산당을 세운 사람이 되었다. 감옥을 세 번 드나들고 기와공장 인부로 숨어 해방을 맞았다. 해방 뒤 남쪽 좌익의 중심이었던 그는 북으로 가 부수상이 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그 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박헌영으로 살아 보기족보로그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