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최씨 永川 崔氏

옛 경상도 영천오늘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려 때 영주(永州)라 불린 영천을 본관으로 삼는다. 화통도감을 세워 진포에서 왜선을 불사른 최무선과, 그 책을 물려받아 조선의 화포를 맡은 아들 최해산의 집안이다.

최무선 崔茂宣

?~1395 · 고려 말 · 무신

사기꾼 소리를 듣던 무관, 진포의 바다를 태우다

최무선의 실제 일생

최무선(1325?~1395)은 영주(지금의 영천) 사람으로 광흥창사 최동순의 아들이다. 기술에 밝고 방략이 많았으며 병법 이야기를 좋아했다. 왜구를 막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다고 여겨 강남에서 오는 상인들에게 그 법을 묻던 끝에, 이원(李元)이라는 사람에게서 염초 굽는 요령을 얻었다고 전한다. 도당은 처음 그를 믿지 않았으나 거듭된 건의 끝에 1377년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고, 그는 제조가 되어 대장군포·화전·주화 등 여러 화기와 전함을 만들었다. 1380년 왜선 수백 척이 진포에 들어오자 부원수로서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와 함께 나가 화포로 그 배들을 불살랐다. 고려에서 지문하부사에 이르렀고, 위화도 회군 뒤 화통도감은 군기시에 합쳐졌다. 조선이 선 뒤 늙어 쓰이지는 못했으나 검교 참찬문하부사를 받았고 1395년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부인에게 책 한 권을 맡겨 아들 최해산이 자라면 주라 했다고 실록은 적었다. 1401년 의정부 우정승·영성부원군으로 추증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무선」 encykorea.aks.ac.kr/Article/E0057297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통도감」 encykorea.aks.ac.kr/Article/E0064918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해산」 encykorea.aks.ac.kr/Article/E0057749
  4. 태조실록 4년(1395) 4월 19일 「검교 참찬문하부사 최무선의 졸기」 (위키문헌 번역본 ko.wikisource.org/wiki/조선왕조실록/태조강헌대왕실록/4년)
  5. 위키백과 「최무선」 ko.wikipedia.org/wiki/최무선
  6. 위키백과 「진포 해전」 ko.wikipedia.org/wiki/진포_해전

광흥창사 최동순의 아들. 왜구를 막는 데는 화약만 한 것이 없다고 믿었지만, 고려에는 그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강남에서 오는 장사꾼마다 붙잡고 묻는 그를 도당의 대신들은 사기꾼이라 불렀다. 그 고집이 진포의 바다에 닿기까지 무엇을 걸지 당신이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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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최씨의 이름난 인물
  • 최무선1326~1395화약 무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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