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민씨 驪興 閔氏

옛 경기도 여흥오늘의 경기도 여주시시조 민칭도(閔稱道)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집안. 그녀가 쫓겨나 살던 안국동 집은 훗날 영조가 감고당(感古堂)이라 이름 붙였고, 같은 집안의 명성황후가 그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인현왕후 仁顯王后

1667~1701 · 조선 후기 · 내명부

쫓겨난 왕비, 다섯 해 만에 돌아오다

인현왕후의 실제 일생

인현왕후(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진 송씨(송준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1681년 열다섯 살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다. 1688년 소의 장씨가 왕자를 낳고 이듬해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5월 2일 폐서인되어 안국동 사가로 나갔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4월 복위령이 내려졌고 6월 다시 왕비로 책봉되었다. 1700년 봄부터 병을 앓다가 1701년 8월 14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세상을 떠났고, 능은 서오릉의 명릉이다. 그 사가에는 훗날 영조가 감고당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현왕후」 encykorea.aks.ac.kr/Article/E0047128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빈 장씨」 encykorea.aks.ac.kr/Article/E0066097
  3. 위키백과 「인현왕후」「박태보」「김춘택」
  4. 숙종실록 7년(1681)~27년(1701)

열다섯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고, 임금의 마음은 궁녀 장씨에게 있었다. 스물셋에 서인(庶人)으로 쫓겨나 안국동 사가에서 다섯 해를 살았고, 다시 왕비로 돌아와 일곱 해 뒤 세상을 떠났다. 장희빈의 이야기를 반대편에서 다시 산다.

인현왕후로 살아 보기
여흥 민씨의 이름난 인물
  • 명성황후1851~1895고종의 왕비
  • 인현왕후1667~1701숙종의 계비
  • 민영환1861~1905을사늑약에 자결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