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알려진 허균과 그 누이 허난설헌의 집안.
허준 許浚
1539~1615 · 조선 중기 · 의관
서자로 태어나 임금의 맥을 짚고 동의보감을 쓰다
허준의 실제 일생
허준(1539~1615)은 양천 허씨 허론의 아들로, 어머니가 정실이 아니어서 서자로 태어났다. 1571년 무렵 내의원에 들어가 1590년 왕자의 두창을 고친 공으로 당상관에 올랐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피란길을 따라 1604년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되고 양평군에 봉해졌다. 1596년 왕명으로 의서 편찬을 시작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중단되자 홀로 이어 갔다.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수의(首醫)로서 책임을 지고 삭탈관직되어 귀양을 갔다가 이듬해 풀려났고, 1610년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했다. 이 책은 1613년 내의원에서 간행되었다. 1615년 세상을 떠났고, 생전에 대간의 반대로 받지 못한 정1품 보국숭록대부가 추증되었다.
양천 허씨 허론의 아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니어서 서자로 태어났고, 문과를 볼 수 없는 신분이라 의술을 익혀 내의원에 들어갔다. 왕자의 두창을 고쳐 당상관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는 피란길의 임금을 의주까지 따랐다. 임금이 죽자 그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다가 돌아와 『동의보감』을 마쳤다.
허균(1569~1618)은 양천 허씨로 동지중추부사 허엽의 아들이며 허봉·허난설헌의 동생이다. 유성룡에게 학문을, 서얼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1597년 문과 중시에 장원했으나, 황해도도사 때는 기생 문제로, 수안군수와 삼척부사 때는 불교를 믿는다는 탄핵으로 물러났다. 1610년 시험관으로서 친척을 합격시켰다는 탄핵을 받아 함열로 귀양 갔다. 1613년 계축옥사로 가까웠던 서얼 서양갑·심우영이 처형되자 이이첨에게 기대 대북에 들었고, 형조판서와 좌참찬에 올라 폐모론에 앞장섰다. 1618년 남대문에 격문이 붙은 사건으로 역모 죄를 쓰고 처형되었다. 국문학사는 이식의 기록을 근거로 그를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본다.
허엽의 아들, 허난설헌의 동생. 문과 중시에 장원한 천재였지만 기생 문제로, 불교를 믿는다고,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지 않았다고 여러 번 벼슬에서 쫓겨났다. 서얼 벗들과 어울렸고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에는 폐모론의 앞자리에 섰다가 역모 죄로 생을 마쳤다. 파격을 밀어붙일 것인가, 몸을 사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