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 조선 중기의 학자 하서 김인후와, 중앙학교·경성방직·동아일보·보성전문을 일군 인촌 김성수가 이 본관이다.
김성수 金性洙
1891~1955 · 광복 전후 · 기업인·교육자
학교·신문·공장을 세운 지주의 아들, 그리고 연단
김성수의 실제 일생
김성수(1891~1955)는 전라북도 고창의 큰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자랐다. 1908년 송진우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914년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했고, 1919년 경성방직을 세웠으며, 1920년 동아일보 창간을 주도했다. 3·1운동 준비 때 그의 집과 중앙학교가 모임 장소가 되었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교장을 지냈고, 이 학교는 1946년 고려대학교가 되었다. 1937년부터 중일전쟁을 정당화하는 라디오 시국강좌와 강연에 나서고 국방헌금을 냈으며, 1943년 무렵에는 신문 기고와 연설로 학도지원병과 징병을 독려했다. 이 행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었고, 1962년 받은 훈장은 대법원 판결을 거쳐 2018년 취소되었다. 학교와 회사를 지키려 한 어쩔 수 없는 처신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해방 뒤 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을 이끌었고, 1951년 부통령이 되었으나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 항의해 사임했다. 1955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호남 큰 지주 집안의 양자는 물려받은 돈으로 학교를 사고, 공장을 세우고, 신문을 만들었다. 그 학교와 신문이 민족운동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자 그는 총독부의 연단과 지면에 섰다. 지키려던 것과 내준 것, 그 사이에서 그가 무엇을 셈했는지 따라가 본다. 1908년 창평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