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義城 金氏

옛 경상도 의성오늘의 경상북도 의성군시조 김석(金錫)

안동 내앞(천전)에 뿌리내린 집안. 퇴계의 수제자 학봉 김성일이 이 집에서 났다.

김성일 金誠一

1538~1593 · 조선 중기 · 문신

"그런 조짐은 없었다" — 그 한마디를 몸으로 갚다

김성일의 실제 일생

김성일(1538~1593)은 의성 김씨 김진의 아들로 안동에서 태어나 이황에게 배웠다. 1568년 증광 문과에 급제했고, 1572년 노산군(단종)의 묘를 높이고 사육신의 관작을 되돌리자고 아뢰는 등 곧은 말로 이름났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와 이듬해 정사 황윤길과 달리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이 없다고 보고했다. 1592년 경상우병사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책임으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중, 류성룡 등의 변호로 직산에서 경상우도초유사가 되었다. 곽재우 등 의병을 돕고 김시민이 진주성을 지키게 했으며, 경상우도관찰사를 거쳐 1593년 4월 진주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성일」 encykorea.aks.ac.kr/Article/E000948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성일 유서」 encykorea.aks.ac.kr/Article/E0009487
  3.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1590~1593)
  4. 류성룡 『징비록』

퇴계 이황의 수제자. 임금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와 "왜가 쳐들어올 기색은 없었다"고 아뢰었고, 이듬해 전쟁이 터졌다. 죄인이 된 그는 경상도로 돌아가 의병을 모았다.

김성일로 살아 보기
의성 김씨의 이름난 인물
  • 김성일1538~1593통신사 부사
  • 김안국1478~1543모재, 사림 관료
  • 김우옹1540~1603동강, 남명의 제자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