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송씨 新平 宋氏

옛 충청도 신평오늘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시조 송구진(宋丘進)

옛 신평 고을을 본관으로 하는 송씨. 면앙정가의 시인 송순, 동아일보를 이끈 고하 송진우가 이 본관이다.

송진우 宋鎭禹

1890~1945 · 광복 전후 · 언론인

동아일보와 한민당, 해방 넉 달 만의 총성

송진우의 실제 일생

송진우(1890~1945)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다. 1908년 김성수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915년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했고, 중앙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학교 숙직실을 근거지로 3·1운동 준비에 참여했다. 3·1운동 직후 붙잡혀 1920년 무죄 판결로 풀려나기까지 1년 반 옥고를 치렀다. 1921년부터 동아일보 사장·주필·고문을 번갈아 맡으며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브나로드 운동을 이끌었고, 1926년에는 국제농민본부의 3·1절 기념사를 실은 일로 징역 6월을 살았다. 총독부 아래 자치를 꾀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19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사장에서 물러났고, 1940년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된 뒤에는 학병 권유 같은 협력 요구를 병을 핑계로 거부했다. 해방 뒤 건국준비위원회 참여를 거절하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임시정부 추대를 주장했다. 1945년 12월 30일 새벽, 반탁 방법을 두고 신중론을 편 직후 자택에서 청년들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진우」 encykorea.aks.ac.kr/Article/E0031073
  2. 위키백과 「송진우 (1890년)」 ko.wikipedia.org/wiki/송진우_(1890년)

담양의 선비 집 넷째 아들은 친구 김성수와 함께 바다를 건넜고, 돌아와 학교와 신문을 맡았다. 총독부와는 신문 지면 한 칸을 두고 싸웠고, 해방 뒤에는 여운형의 손을 뿌리치고 임시정부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탁통치로 들끓던 해의 마지막 새벽, 자기 집에서 총에 맞았다. 1908년 담양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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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송씨의 이름난 인물
  • 송진우1890~1945동아일보와 한민당, 해방 넉 달 만의 총성
  • 송순1493~1582면앙정가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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