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주씨 新安 朱氏

오늘의 중국 안후이성

중국 신안을 본관으로 하는 주씨. 주희의 증손 주잠이 고려 때 건너와 나주와 능성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19세기 이후 장수와 이 집안에서는 진주성의 의기 논개를 주달문의 딸이라 전한다.

논개 論介

?~1593 · 조선 중기 · 의기

기록은 한 줄, 이야기는 백 줄. 진주성의 의기

논개의 실제 일생

논개(?~1593)는 임진왜란 때 진주목의 관기로,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진 뒤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은 진주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다가 광해군 때 유몽인이 엮은 『어우야담』에 처음 기록되었고, 이 무렵 진주 사람들이 남강의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관기라는 이유로 실리지 못했다. 1721년 경상우병사 최진한이 포상을 건의하자 관민이 함께 의암사적비를 세웠고, 그 자손의 부역을 덜어 주는 특전이 내려졌다. 1739년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노력으로 의암 곁에 의기사가 세워졌고,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이 해마다 의암별제를 지내게 했다. 19세기 이후 그녀가 전라도 장수 출신으로 주씨 집안의 딸이며 최경회 혹은 황진과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으나, 당대의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논개」 encykorea.aks.ac.kr/Article/E0013009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진주 의암 사적비」 encykorea.aks.ac.kr/Article/E0067364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진주전투」 encykorea.aks.ac.kr/Article/E0054918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논개사당」 encykorea.aks.ac.kr/Article/E0013011
  5. 위키백과 「논개」 ko.wikipedia.org/wiki/논개
  6. 유몽인 『어우야담』 인륜편

진주성의 의기 논개. 그녀를 처음 적은 글은 광해군 때 유몽인이 엮은 『어우야담』이고, 거기서 그녀는 「진주의 관기」다. 장수에서 났다는 이야기, 주씨 집 딸이라는 이야기, 최경회와의 인연은 19세기 이후에 덧붙었다. 이번 생은 기록과 전설 사이를 걷는다.

논개로 살아 보기
신안 주씨의 이름난 인물
  • 논개?~1593기록은 한 줄, 이야기는 백 줄. 진주성의 의기

족보로그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