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 星州 李氏

옛 경상도 성주오늘의 경상북도 성주군시조 이순유(李純由)

「이화에 월백하고」의 이조년, 우왕 때의 권신 이인임, 그리고 고려 삼은의 한 사람 도은 이숭인이 모두 이 본관이다.

이숭인 李崇仁

1347~1392 · 고려 말 · 문신

명 황제가 탄복한 붓, 벗이 세운 나라에서 꺾이다

이숭인의 실제 일생

이숭인(1347~1392)은 성산군 이원구의 아들로, 1360년 열네 살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1362년 과거에 급제했다. 1371년 명나라에 보낼 선비를 뽑는 시험에서 1등을 했으나 공민왕이 그를 아껴 보내지 않았다. 우왕 초 북원의 사신을 돌려보내자고 청하다 대구현으로 쫓겨났고, 뒤에 밀직제학·지밀직사사에 올라 명나라와 오가는 외교 문서를 도맡았다. 1388년 최영의 문객 정승가의 참소로 통주에 귀양 갔다가 위화도 회군 뒤 돌아와 이색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흥군의 진위 문제와 윤이·이초의 옥사로 거듭 쫓겨나 청주 옥에 갇혔다. 1392년 정몽주가 죽자 그 당으로 몰려 순천으로 귀양 갔고, 조선이 선 직후 나주로 내려온 황거정에게 매를 맞고 남평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종 때 엮인 태조실록은 오랜 벗 정도전이 그를 몰래 헐뜯어 죽게 했다고 적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숭인」 encykorea.aks.ac.kr/Article/E0044922
  2. 태조실록 1권 1년(1392) 8월 23일 「이숭인·이종학·우홍수의 졸기」
  3. 태조실록 9권 5년(1396) 5월 7일 「한산백 이색의 졸기」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호문」 encykorea.aks.ac.kr/Article/E0001487
  5. 『도은집』

열네 살에 성균시에 붙은 성주의 수재. 이색은 "우리 동방의 문장에 자안 같은 이가 없었다" 했고, 명 태조는 그가 지은 표문을 칭찬했다. 그러나 고려의 마지막 스무 해 동안 그는 대구로, 통주로, 성주로, 청주의 옥으로 쫓겨 다녔다. 가장 오래 사귄 벗 정도전이 새 나라를 세우던 해, 그의 이름이 어느 명단에 오를지는 당신이 고른다.

이숭인으로 살아 보기
성주 이씨의 이름난 인물
  • 이조년1269~1343이화에 월백하고
  • 이숭인1347~1392고려 삼은의 한 명
  • 이인임1312~1388고려 말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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