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채씨 平康 蔡氏

옛 강원도 평강오늘의 강원도 평강군(북한)

정조의 남인 재상 번암 채제공의 집안.

채제공 蔡濟恭

1720~1799 · 조선 후기 · 문신

사도세자를 지키려 했고 정조를 지킨 남인 재상

채제공의 실제 일생

채제공(1720~1799)은 홍주에서 태어나 1743년 문과에 급제했다. 1758년 도승지로 있을 때 영조가 세자 폐위의 비망기를 내리자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 철회시켰고, 1762년 사도세자가 죽을 때는 모친상으로 조정을 떠나 있었다. 정조 즉위 뒤 형조판서 겸 판의금부사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책임 있는 이들을 다스렸으나, 1780년 홍국영이 몰락한 뒤 공격을 받아 8년 동안 명덕산에 은거했다. 1788년 우의정, 1790년 좌의정이 되어 3년 동안 홀로 정승 자리를 지키며 1791년 신해통공을 시행했고, 말년에는 수원 화성 축성을 총괄했다. 1799년 세상을 떠났고,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관작을 빼앗겼다가 1823년 회복되었다. 시호는 문숙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채제공」 encykorea.aks.ac.kr/Article/E0055646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해통공」 encykorea.aks.ac.kr/Article/E0033551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해박해」 encykorea.aks.ac.kr/Article/E0033544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국영」 encykorea.aks.ac.kr/Article/E0063980
  5. 영조실록·정조실록·순조실록, 『번암집』, 『화성성역의궤』

홍주 출신의 남인. 영조 때 도승지로서 세자를 폐한다는 왕명을 목숨 걸고 막아 냈고,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던 해에는 어머니 상을 치르느라 조정에 없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그 아들의 재상이 되어, 시전 상인의 특권을 깨는 신해통공을 밀어붙이고 수원 화성을 쌓는 일을 총괄했다.

채제공으로 살아 보기
평강 채씨의 이름난 인물
  • 채제공1720~1799정조의 남인 재상
  • 채인규1230~1303고려 도첨의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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