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류씨 豊山 柳氏

옛 경상도 풍산오늘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시조 류절(柳節)

안동 하회마을의 집안. 임진왜란의 재상 서애 류성룡과 그 형 겸암 류운룡이 이 집에서 났다.

류성룡 柳成龍

1542~1607 · 조선 중기 · 문신

책상에서 전쟁을 치른 재상, 반성문을 국보로 남기다

류성룡의 실제 일생

류성룡(1542~1607)은 풍산 류씨 황해도관찰사 류중영의 아들로, 이황에게 배웠다. 1566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1590년 우의정이 되어 광국공신에 올랐으며, 1591년 좌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하면서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권율을 의주목사로 천거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한 도체찰사로 군무를 맡았고, 영의정이 되어 임금을 모시다 탄핵으로 물러났다가 평안도 도체찰사로 평양 수복을 도왔다. 1593년 다시 영의정에 올라 훈련도감을 이끌었다. 1598년 명나라 정응태의 무고 사건과 관련해 북인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고, 고향에서 『징비록』을 지었다. 1607년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성룡」 encykorea.aks.ac.kr/Article/E0041546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성룡 종가 유물」 encykorea.aks.ac.kr/Article/E0041548
  3.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1590~1607)
  4. 류성룡 『징비록』

퇴계 이황의 제자. 전쟁 한 해 전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했고, 전쟁이 터지자 칼 대신 장부와 군량과 명나라 장수의 얼굴을 붙들었다. 전쟁이 끝나던 날 그는 파직되었고, 고향에 내려가 자기 잘못까지 적은 책을 썼다.

류성룡으로 살아 보기
풍산 류씨의 이름난 인물
  • 류성룡1542~1607징비록, 임란 재상
  • 류운룡1539~1601류성룡의 형
  • 류후조1798~1876고종 때 좌의정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