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공신 윤신달을 시조로, 여진을 친 윤관을 중시조로 한다. 조선에서 왕비 다섯을 낸 집안. 그 가운데 문정왕후의 동생이 윤원형이다.
윤원형 尹元衡
1503~1565 · 조선 전기 · 문신
누이가 대비가 되었다. 그다음은 내 차례다
윤원형의 실제 일생
윤원형(1503~1565)은 윤지임의 아들이자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1533년 문과에 급제했고,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을 세자로 세우려다 세자의 외숙 윤임과 맞서 대윤·소윤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인종이 즉위하자 탄핵으로 쫓겨났으나 1545년 명종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죽였다. 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남은 반대파를 숙청했고, 형 윤원로와도 권력을 다투었다. 첩 정난정을 정경부인으로 올렸으며 이조판서·우의정을 거쳐 1563년 영의정에 올랐다. 1565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탄핵을 받아 쫓겨났고, 그해 11월 강음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이의 『석담일기』는 그가 의금부 도사가 온다는 말을 잘못 듣고 정난정과 함께 약을 먹었다고 적었다.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다섯째 아들. 누이가 중종의 왕비가 되고, 그 누이가 낳은 조카가 열한 살에 왕이 되었다. 그는 스무 해 동안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손이었다. 사림은 그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적었다. 이번에는 그 손을 당신이 쥔다. 1517년, 누이가 왕비가 되던 해부터 시작한다.
윤관(?~1111)은 개국공신 윤신달의 현손으로, 문종 때 급제해 습유·보궐을 거쳤다. 숙종 때 요와 송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지추밀원사 겸 한림학사승지에 올랐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으로 여진과 싸웠다가 기병에 크게 패해 화친을 맺고 물러났고, 기병 신기군·보병 신보군·승려 항마군으로 이루어진 별무반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1107년(예종 2) 원수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과 17만 대군으로 여진을 쳐 135곳을 깨뜨리고 함주·영주·웅주·복주·길주 등에 9성을 쌓았다. 여진의 반격과 간청 속에 조정은 1109년 9성을 돌려주기로 했고, 그는 관직과 공신호를 빼앗겼다. 예종의 비호로 이듬해 수태보 문하시중에 다시 올랐으나 사양했고, 1111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의 현손. 문종 때 급제한 문신이었다. 1104년 여진 기병에게 크게 지고 돌아와, 말 가진 자와 없는 자와 승려까지 끌어모은 별무반을 만들었다. 3년 뒤 17만 대군으로 동북의 여진을 몰아내고 9성을 쌓았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그 성들을 돌려주어야 했다. 쌓는 일과 돌려주는 일, 둘 다 당신이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