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윤씨 南原 尹氏

옛 전라도 남원오늘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시조 윤위(尹威)

병자호란 때 척화를 외치다 심양에서 죽은 삼학사 윤집, 주자와 다르게 경전을 읽었다가 사문난적이라는 말을 들은 백호 윤휴의 집안.

윤휴 尹鑴

1617~1680 · 조선 후기 · 학자

주자에게 물음표를 달았다가 사문난적이 된 학자

윤휴의 실제 일생

윤휴(1617~1680)는 남원 윤씨로 대사헌 윤효전의 아들이며, 두 돌이 못 되어 아버지를 여의고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1635년 속리산 복천사에서 열 살 위의 송시열과 사흘을 토론해 그를 감탄시켰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전에는 벼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중용』『대학』 등 경전을 주자와 다르게 나누고 풀어 평생의 저술 『독서기』를 남겼다. 이 학문은 처음에는 당색을 넘어 칭찬받았으나, 1659년 기해예송 때 포의로서 송시열의 기년설을 가장 먼저 반박한 뒤 사문난적으로 규탄받았다. 1674년 오삼계의 난 소식에 북벌을 청하는 대의소를 올렸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성균관사업으로 처음 벼슬에 나서 대사헌·판서를 거쳐 1679년 우찬성에 올랐다. 허목과 함께 청남을 이끌며 도체찰사부 설치, 만과, 병거 제작 등 북벌을 준비했으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사사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휴」 encykorea.aks.ac.kr/Article/E0042718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수의 변」 encykorea.aks.ac.kr/Article/E0076456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목」 encykorea.aks.ac.kr/Article/E0063049
  4. 위키백과 「윤휴」 ko.wikipedia.org/wiki/윤휴

대사헌 윤효전의 늦둥이 아들. 열아홉 살에 열 살 위 송시열과 사흘을 토론해 그를 감탄시켰고, 병자년의 치욕을 씻기 전에는 벼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경전을 주자와 다르게 읽었다가 평생의 벗에게서 사문난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예순을 바라보며 처음 벼슬에 나가 북벌을 준비했고, 그 칼자루가 그의 목을 겨누었다.

윤휴로 살아 보기
남원 윤씨의 이름난 인물
  • 윤집1606~1637삼학사
  • 윤휴1617~1680경신환국에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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