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금성)를 본관으로 하는 나씨. 우리나라 첫 여성 서양화가로 꼽히는 정월 나혜석이 이 본관이다.
나혜석 羅蕙錫
1896~1948 · 일제강점기 · 화가
첫 여성 서양화가. 그림도 글도 숨기지 않았다
나혜석의 실제 일생
나혜석(1896~1948)은 수원에서 시흥·용인 군수를 지낸 나기정의 5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 호는 정월이다.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1913년 도쿄 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배웠으며, 1914년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을, 1918년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5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혼인했다.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첫 유화 개인전을 열었고,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해마다 출품해 입선과 특선을 거듭했다. 1927년 남편과 세계 일주에 올라 파리에서 약 8개월 그림을 공부하고 1929년 돌아왔다. 1930년 이혼했고, 1934년 『삼천리』에 「이혼고백장」을 발표해 큰 논란을 불렀다. 1935년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화가 활동이 끊겼고, 떠돌며 지내다 1948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나석주(1892~1926)는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서당과 보명학교에서 공부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중국 망명을 꾀하다 붙잡혀 넉 달 옥고를 치렀다. 1914년 만주로 이주해 나자구 무관학교에서 여덟 달 군사 훈련을 받았고, 1916년 어머니가 위독해 돌아왔다. 1918년 겸이포에서 쌀가게를 하다 1920년 임시정부의 군사 주비단 일원으로 군자금을 모았고, 은율군수 처단 사건에 관여했다. 1921년 10월 나무배로 톈진을 거쳐 상하이로 망명해 한국노병회에 들었고, 한단군사강습소를 나와 중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24년 의열단에 가입하고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이 되었다. 1926년 김창숙의 자금을 받아 12월 27일 인천으로 들어왔고, 28일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을 습격했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그날 일본인 직원과 경찰 여럿이 죽거나 다쳤다. 추격하는 경찰 앞에서 그는 죽음으로 항거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