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정재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1783년 성균관에 들어갔고, 이듬해 이벽에게 천주교 교리를 들었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한강 배다리와 수원 화성 설계에 참여했고 거중기를 고안했다. 경기 암행어사·곡산부사·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나 천주교와 얽힌 일로 거듭 공격받았다.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셋째 형 정약종은 처형되고, 그는 장기를 거쳐 황사영 백서 사건 뒤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8년 유배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 등을 지었고, 1818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1836년 혼인 60주년 되는 날 마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