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박씨 密陽 朴氏

옛 경상도 밀양오늘의 경상남도 밀양시인구 2위 본관시조 박언침(朴彦忱)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을 시조로 하는 집안. 세종의 음악을 세운 난계 박연이 이 집안 사람이다.

박연 朴堧

1378~1458 · 조선 전기 · 문신

세종의 귀를 가진 신하, 소리로 나라를 고르다

박연의 실제 일생

박연(1378~1458)은 충청도 영동 사람으로 1405년 생원, 1411년 진사가 되었다. 세자 시절의 세종을 세자시강원 문학으로 가르쳤고, 세종이 즉위하자 악학별좌를 맡아 율관을 만들고 아악을 정비했다. 1427년 남양에서 난 경석으로 만든 편경 12매를 올렸다. 공조참의·중추원 부사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뒤 막내아들 계우가 단종을 둘러싼 옥사에 연루되어 죽었으나, 박연은 세 임금을 섬긴 원로라 하여 연좌를 면했다. 1458년 고향 고당리에서 여든하나로 세상을 떠났고, 1767년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연」 encykorea.aks.ac.kr/Article/E0020921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난계유고」 encykorea.aks.ac.kr/Article/E0011679
  3. 세종실록 7년(1425) 8월 26일·9년(1427) 5월 15일·12년(1430)·15년(1433) 정월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동 난계사」 encykorea.aks.ac.kr/Article/E0011678

충청도 영동의 효자, 피리 부는 선비. 충녕대군을 가르쳤고, 그 제자가 세종이 되자 조선의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맞췄다. 소리 하나에 목숨을 걸던 사람이 마지막에 지키지 못한 것은 막내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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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朴齊家

1750~1805 · 조선 후기 · 학자

서얼의 천재, 청나라에서 부자 나라의 길을 보다

박제가의 실제 일생

박제가(1750~1805)는 승지 박평의 서자로 태어났다. 열아홉 무렵부터 박지원·이덕무·유득공 등과 어울렸고, 1777년 이덕무·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엮인 사가시집 『한객건연집』이 청나라에서 간행되어 이름을 떨쳤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와 『북학의』를 지었고, 1779년 정조가 규장각에 둔 검서관에 서얼 출신 학자들과 함께 임명되었다. 1790년 건륭제의 팔순절 사행에 이어 압록강에서 다시 왕명을 받아 연경에 다녀왔고, 1794년 춘당대 무과에 장원했으며 영평 현령 때 「응지농정소」를 올렸다. 1801년 네 번째 연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흉서 사건에 사돈으로 엮여 종성으로 귀양 갔다가 1805년 풀려났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제가」 encykorea.aks.ac.kr/Article/E0021136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학의」 encykorea.aks.ac.kr/Article/E0024784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객건연집」 encykorea.aks.ac.kr/Article/E0060962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호수」 E0028303 · 「윤행임」 E0042672 · 「김정희」 E0010428
  5. 『북학의』·『정유각집』

승지 박평의 서자. 소년 시절부터 시·글씨·그림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서얼이라 벼슬길의 천장이 낮았다. 청나라를 보고 돌아와 『북학의』를 썼고, 정조가 만든 규장각 검서관 자리에 앉았다. 천장은 낮았고, 그는 키가 컸다.

박제가로 살아 보기
밀양 박씨의 이름난 인물
  • 박연1378~1458세종의 궁중 음악가
  • 박위?~1398대마도를 정벌한 장수
  • 박충원1507~1581대제학을 지낸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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