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이씨라고도 한다. 고려 말 진보현 아전 이석을 시조로 하며, 그 후손이 안동 예안 온계리에 자리 잡아 퇴계 이황을 냈다.
이황 李滉
1501~1570 · 조선 전기 · 학자
사직서 스무 번, 편지 논쟁 여덟 해
이황의 실제 일생
이황(1501~1570)은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생후 일곱 달 만에 아버지를 잃었다. 1534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1543년 이후 벼슬을 사퇴하거나 받지 않은 일이 스무 번이 넘었다. 1545년 을사사화 때 한때 삭직되었다가 복직되었고, 이듬해 고향 토계를 퇴계로 고쳐 호로 삼았다. 풍기군수로서 백운동서원의 사액을 청해 소수서원을 열었고, 1560년 도산서당을 지어 제자를 길렀다. 1559년부터 기대승과 사단칠정을 두고 편지로 논쟁했다. 1568년 선조에게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올렸고, 1570년 12월 8일 매화에 물을 주라 이른 뒤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벼슬을 내놓거나 받지 않은 일이 스무 번이 넘었다. 그런데도 임금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 아래 신참 관료와 여덟 해 동안 편지로 다투었고, 그 편지가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바꾸었다. 칼은 한 번도 뽑지 않은 사람. 그의 싸움은 나아가고 물러남, 그리고 글자 하나의 무게였다. 서른셋, 성균관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