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晉州 姜氏

옛 경상도 진주오늘의 경상남도 진주시인구 6위 본관시조 강이식(姜以式)

명과 후금 사이에서 군대를 이끌고 갔다가 여덟 해 만에 적군과 함께 돌아온 도원수 강홍립의 집안.

강홍립 姜弘立

1560~1627 · 조선 중기 · 문신

명과 후금 사이, 두 제국 틈에 선 도원수

강홍립의 실제 일생

강홍립(1560~1627)은 진주 강씨로 우의정 강사상의 손자이자 참판 강신의 아들이다. 1597년 알성문과에 급제했고, 1605년 도원수 한준겸의 종사관과 진주사 서장관을 거쳐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다. 1618년 진녕군에 봉해졌고, 명나라가 후금을 치려고 원병을 청하자 오도원수로서 부원수 김경서와 함께 1만 3천여 명을 이끌고 출병했다. 1619년 부차에서 조명 연합군이 크게 패하자 남은 군사와 함께 후금에 항복했는데, 이것이 광해군의 밀지에 따른 것이었다는 기록과 그것을 의심하는 견해가 함께 있다. 후금에 억류되었다가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군과 함께 들어와 강화에서 화의를 주선했고, 그 뒤 역신으로 몰려 관작을 삭탈당한 채 그해 세상을 떠났으며 죽은 뒤 관작이 회복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홍립」 encykorea.aks.ac.kr/Article/E0001497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로전」 encykorea.aks.ac.kr/Article/E0077429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경서」 encykorea.aks.ac.kr/Article/E0008631
  4. 광해군일기 10~11년(1618~1619), 인조실록 5년(1627)

우의정 강사상의 손자, 참판 강신의 아들. 붓을 쥐던 문신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1만 3천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명나라를 도우러 간 군대는 후금에 항복했고, 도원수는 여덟 해 뒤 후금 군대와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역적인가, 임금의 밀명을 지킨 사람인가.

강홍립으로 살아 보기

강세황 姜世晃

1713~1791 · 조선 후기 · 문인화가

서른 해 백수, 예순에 첫 출근한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의 실제 일생

강세황(1713~1791)은 예조판서 강현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28년 맏형 강세윤이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면서 가세가 기울자, 1744년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옮겨 서른 해 가까이 시서화에 전념했고, 이익 등과 사귀었으며 어린 김홍도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1763년 영조가 천한 기술로 업신여김을 받을까 염려해 그림을 삼가라 하자 붓을 태우고 다시 그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1773년 61세에 영릉참봉으로 처음 벼슬에 나간 뒤 기로과와 문신정시에 수석으로 급제했고, 1781년 정조의 어진 제작을 감독했다. 호조참판·한성부판윤 등을 지냈고, 1784년 사신단 부사로 북경에 가서 이듬해 정월 건륭제의 천수연에 참석했다. 1791년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헌정(憲靖)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세황」 encykorea.aks.ac.kr/Article/E0001236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세윤」 encykorea.aks.ac.kr/Article/E0001235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홍도」 encykorea.aks.ac.kr/Article/E0011079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현」 encykorea.aks.ac.kr/Article/E0001481
  5. 강세황 「표옹자지」「단원기」, 영조실록 39년(1763) 8월, 정조실록

예조판서 강현의 늦둥이 막내. 맏형이 이인좌의 난에 엮이면서 집안의 벼슬길이 막혔다.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내려가 서른 해 동안 시와 글씨와 그림만 했고, 더벅머리 김홍도에게 붓 잡는 법을 가르쳤다. 예순하나에 첫 벼슬을 받은 이 늦깎이는 한성부 판윤에 오르고, 일흔이 넘어 북경까지 다녀온다.

강세황으로 살아 보기
진주 강씨의 이름난 인물
  • 강희안1418~1464고사관수도의 화가
  • 강항1567~1618간양록, 일본 포로
  • 강세황1713~1791표암, 김홍도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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