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1367~1422)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로, 1383년 문과에 급제했다. 1392년 조영규 등을 시켜 정몽주를 제거해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는 길을 열었으나, 개국공신과 세자 책봉에서 밀려났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제거했고, 1400년 넷째 형 방간의 군사를 꺾은 뒤 세자가 되어 그해 11월 왕위에 올랐다. 사병을 혁파하고 육조직계제·호패법·신문고 등으로 왕권을 다졌으며, 처남 민무구·민무질과 민무휼·민무회 형제를 차례로 사사했다. 1418년 맏아들 양녕대군을 폐하고 셋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에도 상왕으로 병권을 쥐었고, 1419년 대마도 정벌을 이끌었다. 1422년 세상을 떠나 헌릉에 묻혔다.
양녕대군 이제(1394~1462)는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맏아들로, 1404년 왕세자가 되었다. 엄격한 공부와 궁중 법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래 궁을 빠져나가 사냥하는 등 자유분방하게 지내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다. 1417년 남의 첩 어리를 궁에 들인 일이 드러났고, 1418년 아버지의 꾸짖음에 맞서는 글을 올린 끝에 그해 6월 세자에서 폐위되었다. 아우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어 두 달 뒤 즉위했다. 양녕은 광주와 이천 등지에서 지냈고, 대간이 수십 차례 탄핵했으나 세종의 배려로 한 번도 벌을 받지 않았다. 계유정난 때에는 수양대군 편에 섰다고 한다. 1462년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강정(剛靖)이다.
태종의 맏아들 이제(李禔). 열한 살에 세자가 되었지만 책보다 참새가, 경연보다 사냥이 좋았다. 스물다섯에 세자 자리를 아우 충녕에게 내주고, 그 아우가 세종대왕이 되는 것을 곁에서 보았다. 일부러 물러났는지 정말 놀기를 좋아했는지는 지금도 말이 갈린다. 그 답을 당신이 고른다.
이하응(1820~1898)은 남연군 이구의 넷째 아들로, 1843년 흥선군에 봉해졌다. 안동 김씨 세도 아래 불우하게 지내며 조대비(신정왕후)와 연을 맺었고,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둘째 아들 명복이 왕위에 올라(고종) 대원군이 되었다. 서원을 정리하고 호포제를 시행했으며 경복궁을 중건했고, 천주교를 박해하는 한편 병인양요·신미양요를 치른 뒤 척화비를 세웠다. 1873년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물러났다가 1882년 임오군란으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에 붙잡혀 바오딩에 3년간 유폐되었다. 1885년 돌아온 뒤에도 명성황후 세력과 대립했고 1898년 세상을 떠났다. 1907년 대원왕으로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