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1586~1647)은 영흥부사 최기남의 아들로, 이항복의 문하에서 배웠고 1605년 문과에 급제했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정사공신 1등이 되었다. 정묘호란 때 강화를 주장했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화친을 주장했다. 1637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고, 1642년 다시 영의정이 되었으나 임경업 등을 통해 명나라와 몰래 통한 일이 드러나자 수상으로서 책임을 지고 청나라에 끌려가 갇혔다. 1645년 돌아와 1647년 세상을 떠났다. 양명학을 공부했고, 그의 학풍은 강화학파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