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전씨 旌善 全氏

옛 강원도 정선오늘의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시조 전섭(全聶)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는 집안. 고려 말 두문동에 들어간 전오륜, 10만 석 가산으로 옛 그림과 책을 지킨 간송 전형필이 이 본관이다.

전형필 全鎣弼

1906~1962 · 일제강점기 · 수장가

10만 석을 털어 옛 그림과 책을 지킨 부자

전형필의 실제 일생

전형필(1906~1962)은 서울 종로 배오개 일대 상권을 쥔 10만 석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정선, 호는 간송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했고, 1929년 무렵 집안 재산을 홀로 물려받았다. 서예가이자 감식가인 오세창을 따라다니며 우리 옛 그림·글씨·책·도자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을 마련했고, 1938년 물자 통제 속에서도 그 안에 이 땅 첫 사립박물관 보화각을 세웠다. 1940년 무렵 안동에서 나온 훈민정음 해례본을 손에 넣었고, 같은 해 재단법인 동성학원을 세워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했다. 김정희·정선·김홍도·신윤복의 작품과 고려청자 등을 지켜 냈다. 광복 뒤 잠시 보성중학교 교장을 지냈고 1954년 문화재보존위원이 되었으며, 1960년 고고미술동인회를 함께 만들었다. 1962년 1월 세상을 떠났다. 그해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보화각은 뒷날 간송미술관이 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형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49756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간송미술관」 encykorea.aks.ac.kr/Article/E0000539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훈민정음」 encykorea.aks.ac.kr/Article/E0065805
  4. 위키백과 「전형필」 ko.wikipedia.org/wiki/전형필

종로 배오개 장안의 거부 집안, 스물네 살에 그 재산을 혼자 물려받았다. 사람들은 그가 10만 석을 옛 종이와 깨진 그릇에 쏟는다고 혀를 찼다. 그 종이 가운데 하나가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놓칠지, 당신이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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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전씨의 이름난 인물
  • 전형필1906~196210만 석을 털어 옛 그림과 책을 지킨 부자
  • 전오륜1334~1425두문동 72현

족보로그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