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낸 방촌 황희의 집안. 장수 창계서원과 상주 옥동서원에 그를 모신다.
황희 黃喜
1363~1452 · 조선 전기 · 문신
18년 영의정, 네 말도 옳다던 정승
황희의 실제 일생
황희(1363~1452)는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났다. 1389년 문과에 급제했고, 조선이 선 뒤 1394년부터 벼슬을 지냈다. 1405년 지신사가 되어 태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여러 판서를 지냈으나, 1418년 세자 양녕대군을 폐하는 일에 반대하다 교하를 거쳐 남원으로 귀양 갔다. 1422년 다시 불려 와 이듬해 강원도관찰사로 기근을 구했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31년부터 1449년 물러날 때까지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세종의 정치를 떠받쳤다. 사위 서달의 살인 사건과 태석균 사건 등으로 탄핵받은 기록도 실록에 남아 있다. 1452년 아흔으로 세상을 떠났고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익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