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예순의 나이로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과, 그 곁에서 함께 죽은 두 아들 고종후·고인후의 집안.
고경명 高敬命
1533~1592 · 조선 중기 · 문신
장원 급제 시인, 예순에 의병장이 되다
고경명의 실제 일생
고경명(1533~1592)은 장흥 고씨로 대사간 고맹영의 아들이며 광주 압보촌에서 났다. 1552년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1558년 명종이 성균관에 나와 치른 시험에서 수석해 곧바로 전시에 나아가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1563년 홍문관 교리로서 권신 이량의 전횡을 논하는 데 참여했다가, 그 경위를 이량에게 몰래 알린 일이 드러나 울산군수로 좌천된 뒤 파직되었다. 1581년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되어 종계변무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591년 동래부사가 되었으나 서인이 실각하자 곧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에서 6,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전라좌도 의병대장이 되었고, 7월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둘째 아들 고인후, 유팽로·안영 등과 함께 전사했다. 맏아들 고종후는 이듬해 진주성에서 순절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