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장씨 仁同 張氏

옛 경상도 인동오늘의 경상북도 구미시

역관 명문으로 이름난 집안. 중국말을 하는 역관들이 사신 길을 따라 북경을 드나들며 큰 재물을 모았고, 그 집안의 딸이 왕비가 되었다.

희빈 장씨 禧嬪 張氏

1659~1701 · 조선 후기 · 내명부

역관 집안의 딸, 궁녀에서 왕비까지

희빈 장씨의 실제 일생

희빈 장씨(1659~1701)는 역관 집안 출신으로, 큰 부자 역관 장현의 종질녀(오촌 조카딸)이다. 궁녀가 되어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명성왕후에 의해 궁 밖으로 쫓겨났다가, 명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다시 들어와 1686년 숙원, 1688년 소의가 되었고 그해 왕자 윤(훗날 경종)을 낳았다. 1689년 아들이 원자로 정해지며 희빈이 되었고, 기사환국으로 중궁 민씨가 폐서인되자 왕비에 올랐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민씨가 복위하자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1701년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신당을 차려 왕비를 저주했다는 일이 드러나 자진의 명을 받았고, 숙종은 이후 빈이 왕비에 오를 수 없도록 법을 정했다. 1722년 경종이 생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빈 장씨」 encykorea.aks.ac.kr/Article/E0066097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현왕후」 encykorea.aks.ac.kr/Article/E0047128
  3. 위키백과 「희빈 장씨」「숙빈 최씨」「남구만」「동평군」
  4. 숙종실록 12년(1686)~27년(1701), 서울신문 「역관 명문 인동 장씨」(2007)

역관 집안의 딸로 궁녀가 되어 숙종의 눈에 들었고, 쫓겨났다 돌아와 원자를 낳고 마침내 왕비가 되었다. 다섯 해 뒤 다시 희빈으로 내려앉았고, 그로부터 일곱 해 뒤 숙종은 그녀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명했다. 이번 생에서는 그녀가 고른다.

희빈 장씨로 살아 보기
인동 장씨의 이름난 인물
  • 장현광1554~1637여헌, 영남 대학자
  • 장만1566~1629이괄의 난 진압
  • 희빈 장씨1659~1701숙종의 후궁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