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서씨 利川 徐氏

옛 경기도 이천오늘의 경기도 이천시

신라 말 이천의 호족 서신일을 시조로 한다. 서필·서희·서눌 3대가 잇달아 재상에 오르고 모두 종묘에 배향된 집안이다.

서희 徐熙

942~998 · 고려 전기 · 문신

칼 한 번 안 뽑고 땅 280리를 받아 온 사람

서희의 실제 일생

서희(942~998)는 내의령 서필의 아들로, 960년(광종 11) 갑과로 급제해 광평원외랑·내의시랑 등을 거쳤다. 972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 10여 년 끊겼던 외교를 되살렸고, 983년(성종 2) 병관어사가 되었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침입하자 항복론과 서경 이북을 떼어 주자는 할지론을 물리치고 스스로 적진에 가서 담판했다. 뜰에서 절하라는 요구를 거절해 대등한 예로 마주 앉았고,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이며 여진이 길을 막아 통교하지 못한다고 설득해 거란군을 물렸다. 이듬해부터 압록강 동쪽 여진을 몰아내고 장흥·귀화·곽주·귀주·안의·흥화 등에 성을 쌓아 강동 6주의 터를 닦았다. 태보·내사령에 이르러 998년(목종 1)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장위(章威)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희」 encykorea.aks.ac.kr/Article/E0028321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28257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동육주」 encykorea.aks.ac.kr/Article/E0001049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도수」 encykorea.aks.ac.kr/Article/E0070337
  5. 『고려사』 권94 열전7 서희, 권3 세가 성종 12년

내의령 서필의 둘째 아들. 광종이 새로 연 과거에 갑과로 붙었고, 10여 년 끊긴 송나라 길을 다시 열었다. 993년 겨울, 거란 대군이 봉산군을 깨뜨리자 조정은 서경 이북을 떼어 주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혼자 적장의 군막에 들어가 절하지 않고 앉았다. 그 담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당신이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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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서씨의 이름난 인물
  • 서희942~998담판으로 강동6주
  • 서필901~965고려 광종의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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