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 어씨 咸從 魚氏

옛 평안도 함종오늘의 평안남도 증산군 함종리시조 어화인(魚化仁)

평안도 함종을 본관으로 하는 어씨.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 광성보에서 미군과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어재순 형제가 이 집안 사람이다.

어재연 魚在淵

1823~1871 · 조선 말기 · 무신

광성보에 帥 자 깃발을 올린 장수

어재연의 실제 일생

어재연(1823~1871)은 함종 어씨 어용인의 아들로, 자는 성우다. 1841년 무과에 급제해 1864년 장단부사, 1866년 공충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군사를 이끌고 강화 광성진을 지켰고, 이어 회령부사로 북쪽 변경의 비적을 토벌하고 장시를 열었다. 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가 강화 해협에 들어와 손돌목에서 포격전이 벌어지자 진무중군에 임명되어 군사 600여 명과 광성보를 지켰다. 미군은 초지진과 덕진진을 차례로 점거한 뒤 6월 11일(음력 4월 24일) 광성보를 공격했고, 그는 육박전 끝에 아우 어재순과 함께 전사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장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미군이 가져간 그의 수자기는 2007년 대여 형식으로 136년 만에 돌아와 공개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재연」 encykorea.aks.ac.kr/Article/E0036069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미양요」 encykorea.aks.ac.kr/Article/E0032961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화 광성보」 encykorea.aks.ac.kr/Article/E0005160
  4. 위키백과 「어재연」 ko.wikipedia.org/wiki/어재연

어용인의 아들. 열아홉에 무과에 급제해 고을 수령과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북쪽 끝 회령에서는 비적을 치고 장시를 열었다. 1871년 봄, 미국 함대가 강화 해협에 들어오자 그는 광성보로 달려갔다. 그곳에 누런 바탕에 검은 帥 자가 쓰인 대장기를 올렸다.

어재연으로 살아 보기
함종 어씨의 이름난 인물
  • 어재연1823~1871광성보에 帥 자 깃발을 올린 장수
  • 어세공1432~1486병조판서를 지낸 문신
  • 어유구1675~1740경종비의 아버지

족보로그는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