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윤씨 海平 尹氏

옛 경상도 해평오늘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시조 윤군정(尹君正)

임진왜란 때 좌의정으로 임금의 피란길을 지킨 오음 윤두수와, 그 아우 월정 윤근수의 집안.

윤두수 尹斗壽

1533~1601 · 조선 중기 · 문신

임금이 떠난 평양성에 남은 정승

윤두수의 실제 일생

윤두수(1533~1601)는 해평 윤씨로 군자감정 윤변의 아들이며 윤근수의 형이다. 1555년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1563년 이조정랑으로서 권신 이량이 아들을 이조좌랑에 천거한 것을 반대하다 삭직되었으나 그해 무죄가 밝혀져 다시 기용되었다. 1589년 평안감사를 지내고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해원군이 되었으며, 1591년 건저 문제로 정철과 함께 몰려 회령에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기용되어 어영대장·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고,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원익·김명원 등과 함께 평양성을 지켰다. 정유재란 때 영의정 류성룡과 함께 난국을 수습했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물러났다. 1605년 호성공신 2등에 봉해졌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두수」 encykorea.aks.ac.kr/Article/E0042299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근수」 encykorea.aks.ac.kr/Article/E0042241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분조」 encykorea.aks.ac.kr/Article/E0024858
  4.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1579~1601)
  5. 위키백과 「윤두수」「제1차 평양성 전투」

해평 윤씨, 군자감정 윤변의 아들. 아우 윤근수와 함께 서인의 길을 걸으며 파직과 귀양과 복귀를 여러 번 오갔다. 1592년, 귀양에서 돌아온 이듬해 그는 피란길의 정승이 되었다. 임금이 떠난 평양성에, 그는 남았다.

윤두수로 살아 보기
해평 윤씨의 이름난 인물
  • 윤두수1533~1601임진왜란 때 정승
  • 윤근수1537~1616윤두수의 아우
  • 윤방1563~1640인조 때 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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