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정씨 海州 鄭氏

옛 황해도 해주오늘의 황해남도 해주시시조 정숙(鄭肅)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시집온 집안. 단종 비 정순왕후의 능(사릉)이 해주 정씨 선산 안에 있다.

정미수 鄭眉壽

1456~1512 · 조선 전기 · 문신

단종의 조카, 역적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남다

정미수의 실제 일생

정미수(1456~1512)는 영양위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로, 아버지가 유배된 광주에서 태어났다. 1461년 아버지가 반역 혐의로 처형되자 어머니와 서울로 불려 와 세조 부부 손에 자랐고, 세조가 미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자을산군(성종)을 시중하며 자라 1473년 벼슬을 시작했고, 1506년 중종반정의 공으로 정국공신 3등이 되어 우찬성·해평부원군에 올랐다. 혈육이 없던 단종 비 정순왕후는 그의 집에 의탁했고, 그녀가 1521년 세상을 떠나자 해주 정씨 선산에 묻혔다. 1698년 그 무덤이 왕비의 능 사릉이 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미수」 encykorea.aks.ac.kr/Article/E0050213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종」 encykorea.aks.ac.kr/Article/E0050885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양주 사릉」 encykorea.aks.ac.kr/Article/E0025544
  4. 세조실록·성종실록·연산군일기·중종실록

아버지는 단종의 매형 영양위 정종, 어머니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아버지가 역적으로 죽던 해 다섯 살이던 아이는 원수의 궁궐에서 자라 공신이 되었고, 단종이 남긴 마지막 사람을 끝까지 모셨다. 아버지 정종의 생애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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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 鄭榏

1617~1683 · 조선 후기 · 문신

세 번의 환국, 어느 편에 서도 쓸려간다

정익의 실제 일생

정익(1617~1683)은 해주 정씨 정효준의 아들로, 1642년 문과에 급제했다. 남인 계열로 오정창의 장인이었고 도승지·형조판서·한성판윤·좌우참찬 등을 지냈다. 1670년 사은부사로 복선군을 따라 북경에 다녀왔고, 1680년 경신환국 뒤, 1670년 사행 때 들었다는 청 황제의 '신하가 강하다'는 말을 둘러싼 추궁 끝에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1682년 풀려났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고, 서인이 쓴 실록 졸기에는 박한 평이 남았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효준」 encykorea.aks.ac.kr/Article/E0051198
  2. 숙종실록 6년(1680)~9년(1683) 경신환국·정익 졸기
  3. 국조방목 1642년 임오식년문과

해풍군 정효준의 넷째 아들. 형제 다섯이 모두 문과에 급제한 집안에서 남인의 길을 걸어 우참찬까지 올랐다가, 경신환국에 휩쓸려 영덕으로 귀양 갔다. 역사는 정해져 있다. 누구와 가까워지고 누구를 버릴지는 당신이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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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정씨의 이름난 인물
  • 정미수1456~1512단종의 조카
  • 정익1617~1683형조판서·한성판윤
  • 정중부1106~1179무신정변의 주역
    본관·계통에 관한 다른 설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본관을 해주로 기록합니다. 다만 오늘날 정숙을 시조로 하는 해주 정씨와의 계보 연결은 별개의 문제로, 선대 기록이 없어 관계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