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 서문을 쓴 학역재 정인지와, 동국 18현의 한 사람 일두 정여창이 이 본관이다.
정인지 鄭麟趾
1396~1478 · 조선 전기 · 문신
훈민정음 서문을 쓰고, 세조를 "너"라고 부른 사람
정인지의 실제 일생
정인지(1396~1478)는 석성현감 정흥인의 아들로, 1414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태종이 크게 쓸 만하다고 했고, 세종 대에 집현전과 예문관을 거치며 역법·천문 기구·공법 정비를 맡았다. 1446년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을 지었고, 김종서 등과 『고려사』를 고쳐 엮었다. 1453년 계유정난의 계책에 참여해 좌의정·정난공신이 되었고, 세조 즉위 뒤 영의정에 올랐으며 아들 정현조가 세조의 사위가 되었다. 1457년 금성대군과 노산군의 처벌을 청했고, 1458년 술자리에서 세조를 "너"라고 부르는 등 거듭 무례로 탄핵받아 1459년 고신을 빼앗기고 부여로 쫓겨났다가 그해 돌아왔다. 성종 대까지 원로로 남아 1478년 여든셋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관은 그가 검소했으나 재산 불리기를 좋아했다고 적었다.
세조실록 14권 4년(1458) 9월 17일 「의정부와 육조 등에서 정인지의 죄를 청하다」
세조실록 9권 3년(1457) 9월 10일 「신숙주·정인지 등이 금성 대군과 노산군을 사사토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성종실록 98권 9년(1478) 11월 26일 「하동 부원군 정인지의 졸기」
태종이 "크게 쓸 만하다" 했고 세종이 "정인지만이 함께 의논할 수 있다" 한 천재. 하늘의 별을 셈하고, 새 글자의 서문을 쓰고, 고려의 역사를 다시 엮었다. 그리고 계유정난의 밤 수양대군 편에 섰다. 정승이 된 그는 술만 취하면 임금에게 말이 짧아졌다. 여든셋까지 산 사람의 일생, 어디서 말을 아끼고 어디서 잔을 비울지는 당신이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