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육촌의 하나인 알천 양산촌장 알평을 시조로 삼는 집안. 오성과 한음의 오성대감 이항복이 이 집안 사람이다.
이항복 李恒福
1556~1618 · 조선 중기 · 문신
농담으로 전쟁과 당쟁을 건넌 오성대감
이항복의 실제 일생
이항복(1556~1618)은 경주 이씨 참찬 이몽량의 아들로, 19세에 권율의 딸과 혼인했다. 1580년 알성 문과에 급제했고, 1589년 정여립 사건을 처리한 공으로 평난공신이 되었다. 1591년 도승지에 발탁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비를 개성까지 호위하고 선조를 의주까지 모셨으며, 이덕형과 함께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자고 건의했다. 병조판서 등을 거쳐 1598년 우의정으로 명나라에 가서 정응태의 무고를 풀었고, 1600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호성공신 1등으로 오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광해군 때 임해군·영창대군의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하다 1618년 관작을 빼앗기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제현(1287~1367)은 검교정승 이진의 아들로, 1301년 성균시에 장원하고 과거에 급제해 권부의 사위가 되었다. 1314년 상왕 충선왕의 부름으로 원나라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며 조맹부 등 원의 문인들과 사귀었고, 충선왕을 대신해 서촉 아미산에 제사하고 강남 보타사 행차를 따랐다. 1320년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되고 고려를 원의 행성으로 만들자는 입성책동이 일자, 1323년 원 중서성에 글을 올려 그 부당함을 따지고 감숙의 타사마로 충선왕을 찾아갔다. 조적의 난 뒤 물러나 있는 동안 『역옹패설』을 지었고, 공민왕 때 도첨의정승·문하시중 등으로 네 차례 수상을 지냈다. 1367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검교정승 이진의 아들. 열다섯에 성균시 장원을 했고, 1314년 충선왕의 부름으로 원나라 연경의 만권당에 들어가 중국의 이름난 문인들과 붓을 겨루었다. 원나라가 고려를 없애고 행성(行省)으로 삼으려 할 때 그 부당함을 글로 따졌고, 토번으로 쫓겨난 옛 임금을 만나러 만 리를 갔다. 네 번 수상을 지내고도 한 번도 귀양 가지 않은 사람. 그 비결을 당신이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