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1786~1856)는 충청도 예산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가 되었다. 박제가에게 배웠고, 1809년 생원시에 장원한 뒤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완원과 사귀며 고증학을 익혔다. 1816~1817년 북한산 비석을 신라 진흥왕 순수비로 밝혔고, 1819년 문과에 급제해 암행어사·성균관 대사성·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40년 윤상도의 옥사가 다시 불거지자 제주 대정에 유배되어 9년을 살았고, 그곳에서 「세한도」를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 1851년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고, 과천에서 지내다 1856년 세상을 떠났다.
김부식(1075~1151)은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1096년(숙종 1) 급제한 뒤 20여 년 한림원 등 문한직에 있으며 예종·인종에게 경사를 강했다. 1116년 송에 사신으로 가 『자치통감』을 가져왔고, 인종 초 이자겸이 임금에게 신하라 칭하지 않으려 하고 집안 잔치에 궁중 음악을 쓰려 하자 중국의 옛일을 들어 막았다.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자 원수가 되어,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던 정지상·김안·백수한을 처형하고 1년 남짓 포위한 끝에 이듬해 2월 서경을 함락했다. 공으로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윤언이 등을 좌천시킨 인사가 1140년 사면으로 뒤집히자 세 번 사직을 청해 물러났다. 왕명으로 1145년 『삼국사기』 50권을 편찬해 바쳤고, 1151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 송나라 소식 형제의 이름을 딴 네 형제가 모두 급제한 집의 셋째였다. 이자겸이 왕위를 넘보던 시절을 견뎠고,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묘청·정지상과 맞서다 원수가 되어 서경을 쳤다. 그리고 물러나 『삼국사기』 50권을 썼다. 그 붓이 누구를 살리고 무엇을 남길지 당신이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