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한국에서 가장 큰 본관. 가야의 마지막 왕 구해왕의 증손 김유신을 중시조로 받든다.
김유신 金庾信
595~673 · 삼국시대 · 무신
망한 가야의 증손, 셋을 하나로 꿰다
김유신의 실제 일생
김유신(595~673)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 구해왕(구형왕)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서현, 어머니는 만명부인이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를 이끌었고, 629년 낭비성 싸움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이름을 떨쳤다. 누이 문희가 김춘추와 혼인했고, 647년 비담의 난을 진압했으며, 654년 알천과 뜻을 모아 김춘추를 왕으로 세웠다. 660년 상대등으로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를 꺾어 백제를 무너뜨렸고, 668년 고구려가 망한 뒤 태대서발한(태대각간)이 되었다. 673년 7월 1일 79세로 세상을 떠났고, 훗날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김일손(1464~1498)은 청도에 대대로 살던 김해 김씨 집안에서 김맹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배워 1486년 생원 장원, 진사 2등에 이어 식년 문과에 갑과 제2인으로 급제했고, 승문원 정자로 춘추관 기사관을 겸한 뒤 정언·헌납·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언관으로 소릉 복위를 주장하고 훈구 대신의 비리를 비판했으며, 사관으로서 스승의 「조의제문」과 세조 때의 일, 이극돈의 비행을 사초에 적었다. 1498년 『성종실록』 편찬 때 이 사초가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그는 가장 무거운 형벌로 세상을 떠났다. 중종반정 뒤 신원되었고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김만덕(1739~1812)은 제주에서 상인 김응렬의 딸로 태어났다. 열한 살에 아버지가 나주에서 돌아오던 뱃길에 풍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잃자, 퇴기 월중선에게 의탁했다가 기적에 올랐다. 스무 살 무렵 제주 목사와 판관을 찾아가 사정을 호소해 양인 신분을 되찾았고, 객주를 차려 제주 특산물과 뭍의 곡식을 사고팔아 큰 재산을 모았다. 1795년 제주에 큰 흉년이 들자 천금을 내어 배를 마련하고 뭍의 곡식을 사들여, 친척과 은인을 도운 뒤 나머지를 모두 관아로 보내 굶주린 백성을 구했다. 이듬해 정조가 상을 내리려 하자 사양하고 금강산 유람을 청해, 제주 여인으로는 예외적으로 바다를 건너 한양과 금강산을 보고 돌아왔다. 1812년 세상을 떠났고, 묘비에는 김해 김씨로 적혀 있다.
제주 상인의 딸. 열한 살에 아버지를 바다에 잃고 퇴기의 손에 자라 기적에 올랐다가, 스무 살 무렵 관아를 찾아가 양인 신분을 되찾았다. 포구에 객주를 차리고 배를 부려 거상이 되었고, 1795년 섬이 굶어 죽어 갈 때 그 재산으로 뭍의 곡식을 사 왔다. 임금이 소원을 묻자 그녀는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