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錦城)은 나주의 옛 이름이다. 이순신의 군관으로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전쟁 뒤 창선과 해추선을 고안한 체암 나대용이 이 집안 사람이다.
나대용 羅大用
1556~1612 · 조선 중기 · 무신
거북선을 지은 군관, 배를 고치다 생을 마치다
나대용의 실제 일생
나대용(1556~1612)은 금성 나씨로 나주에서 태어났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봉사를 지냈고,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건조에 참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따라 싸워,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을 맡아 적의 큰 배 2척을 깨뜨렸고, 사천해전에서 총탄을 맞았으며 한산도해전에서도 다쳤다.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과 1598년 노량해전에도 참전했다. 그 공으로 1594년 강진현감이 되었고 이어 금구·능성·고성 현감을 지냈다. 전쟁 뒤에는 칼과 창을 빽빽이 꽂고 적은 격군으로 움직이는 창선(鎗船)을 고안했고, 1610년 남해현령이 되어 빠른 배 해추선(海鰌船)을 지었다. 1611년 경기 수군을 거느리는 교동수사에 임명되었으나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도져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나주 문평면에 생가와 묘소, 그를 모신 소충사가 있다.
나주 사람 나대용은 본래 문인이 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과에 붙어 이순신의 군관이 되었고, 판옥선 위에 거북 등을 씌우는 일에 매달렸다. 옥포에서 왜의 큰 배를 깨뜨렸고, 사천에서 총탄을 맞고 한산에서 또 다쳤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덜 죽고 더 빨리 가는 배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