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최씨 江陵 崔氏

옛 강원도 강릉오늘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세종이 술을 줄이라고 친필 편지를 써 보낸 신하 최치운의 집안. 그는 강릉의 향사에 모셔졌다.

최치운 崔致雲

1390~1440 · 조선 전기 · 문신

세종이 술을 줄이라 친서를 내린 신하

최치운의 실제 일생

최치운(1390~1440)은 최안린의 아들로 본관은 강릉이다. 140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집현전에서 학문을 닦았다. 1433년 경력으로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의 종사관이 되어 파저강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고, 지승문원사·판승문원사를 거쳐 공조참의·이조참의·좌승지를 지냈다. 1439년 공조참판으로 계품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범찰·동창 등의 야인이 경성 지역에 살 수 있도록 청해 허락을 받아 냈다. 그 공으로 밭과 노비를 상으로 받았으나 노비는 굳이 사양했다. 예문관 제학을 지냈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를 오갔다. 왕명으로 『무원록』에 주석을 달고 율문을 강해했으며, 어려운 옥사가 있을 때마다 자문에 응했다. 술을 지나치게 즐겨 세종이 친서를 내려 경계하자 그 글을 벽에 걸어 두고 보았다고 한다. 1440년 이조참판으로 있다가 쉰하나에 세상을 떠났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치운」 encykorea.aks.ac.kr/Article/E0057710
  2. 위키백과 「최치운」 ko.wikipedia.org/wiki/최치운
  3. 위키백과 「신주무원록」 ko.wikipedia.org/wiki/신주무원록
  4. 『연려실기술』 권3 「세종조의 명신」 최치운(『소문쇄록』 인용) 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1300A_0040_010_0150
  5. 『연려실기술』 권3 「야인 토벌」 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1300A_0040_010_0070

1417년 문과에 급제한 강릉 최씨 선비. 최윤덕을 따라 파저강을 건넜고, 북경 길을 여러 번 오갔고, 『무원록』에 주석을 달아 억울한 옥사를 줄였다. 세종이 큰일마다 부른 외교관이자 형옥의 자문역이었고, 세종이 술을 걱정한 신하였다. 임금의 편지가 벽에 붙을 때까지 잔을 몇 번 들지는 당신이 고른다.

최치운으로 살아 보기
강릉 최씨의 이름난 인물
  • 최치운1390~1440세종 때 이조참판
  • 최연1503~1549병조판서를 지낸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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