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東萊 鄭氏

옛 경상도 동래오늘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시조 정회문(鄭繪文)

"천하는 공물"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도에서 생을 마친 정여립, 그 이름으로 일어난 기축옥사의 집안.

정여립 鄭汝立

1546~1589 · 조선 중기 · 문신

천하는 공물이라 말한 사람, 역모의 이름이 되다

정여립의 실제 일생

정여립(1546~1589)은 동래 정씨로 전주 사람이다. 1567년 진사가 되고 1570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이이와 성혼의 후원을 받았다. 1583년 예조좌랑, 이듬해 수찬이 되었는데, 이이가 세상을 떠난 뒤 동인 편에 서서 이이와 박순·성혼을 비판했다. 선조가 이를 불쾌히 여기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진안 죽도에 서실을 짓고 대동계를 조직했으며, 1587년에는 전주부윤 남언경의 요청으로 대동계를 이끌고 손죽도의 왜구를 물리쳤다. 1589년 10월 황해도관찰사 한준 등이 그의 역모를 고변하자 아들 정옥남과 죽도로 피했다가 관군이 좁혀 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어진 기축옥사에서 정철이 위관을 맡았고, 이발 등 동인 명사를 비롯해 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모가 실제로 있었는지 꾸며진 옥사였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여립」 encykorea.aks.ac.kr/Article/E0050581
  2.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22년(1589) 10월
  3. 위키백과 「정여립」「기축옥사」「정언신」

전주 사람, 동래 정씨. 이이와 성혼이 아끼던 젊은 문신이었으나 스승을 등지고 동인 편에 섰다가 임금의 미움을 사 고향으로 내려갔다. 진안 죽도에 서실을 짓고 신분을 가리지 않는 모임 대동계를 꾸렸다. 1589년 겨울, 그의 이름으로 조선에서 가장 큰 옥사가 시작되었다.

정여립으로 살아 보기
동래 정씨의 이름난 인물
  • 정창손1402~1487단종 복위 거사를 고변
  • 정광필1462~1538중종 때 영의정
  • 정여립1546~1589기축옥사의 발단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