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도강(오늘의 강진 일대)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 태인에 대대로 살며 1894년 동학농민군 장수 김개남을 냈다. 황현은 그해 태인의 도강 김씨 가운데 접주가 스물네 명이었다고 적었다.
김개남 金開南
1853~1895 · 조선 말기 · 농민군 장수
남쪽을 열겠다던 개남장, 남원에서 청주까지
김개남의 실제 일생
김개남(1853~1895)은 도강 김씨로 태인 지금실(오늘의 정읍) 출신이다. 초명은 김영주, 자는 기선·기범이다. 1890년 무렵 동학에 들어 1891년 접주가 되었고 그해 최시형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892년 삼례 집회와 1893년 보은 집회에서 호남 교도를 이끌어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봄 손화중과 함께 일어나 백산의 호남창의소에서 전봉준을 동도대장으로 세우고 총관령을 맡았다. 전주화약 뒤 남원에 대도소를 두고 전라좌도를 관할했으며, 재봉기를 가장 먼저 주장했다. 10월 전주에 들어가 남원부사와 고부군수를 처형했고, 11월 청주성을 공격하다 크게 패했다. 태인으로 돌아와 숨었다가 임병찬의 고발로 붙잡혀, 1895년 1월 8일(음력 1894년 12월 3일) 전주에서 전라감사 이도재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를 새 세상을 꿈꾼 혁명가로 보는 시각과, 지나친 보복으로 민심을 잃었다고 보는 시각이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