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성 서씨 唐城 徐氏

옛 경기도 당성오늘의 경기도 화성시

송도의 처사 화담 서경덕의 집안. 당성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 일대의 옛 이름이다.

서경덕 徐敬德

1489~1546 · 조선 전기 · 학자

벽에 천지만물의 이름을 붙이고 궁리한 송도의 처사

서경덕의 실제 일생

서경덕(1489~1546)은 개성 사람으로 본관은 당성이다. 아버지는 부위 서호번, 어머니는 한씨다. 1502년 『서경』을 배우다 해와 달이 도는 도수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해 스스로 풀었고, 1506년 『대학』을 읽고는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 써 붙이고 날마다 궁구했다. 1519년 조광조가 연 현량과에 첫째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지어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1531년 어머니의 뜻에 따라 생원시에 장원했으나 벼슬을 단념했고, 1544년 후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중종과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 자최 석 달의 복을 입었다.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기일원론을 세워 「원이기」「이기설」「태허설」「귀신사생론」을 남겼고, 1546년 세상을 떠났다. 1575년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박연폭포·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경덕」 encykorea.aks.ac.kr/Article/E0027580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담집」 encykorea.aks.ac.kr/Article/E0064569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진이」 encykorea.aks.ac.kr/Article/E0065346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호」 encykorea.aks.ac.kr/Article/E0062065
  5. 위키백과 「서경덕」 ko.wikipedia.org/wiki/서경덕

개성 사람. 하급 무관의 아들로 태어나 스승 없이 글을 깨쳤고, 열여덟에는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 써 붙여 놓고 날마다 궁리했다. 조광조가 연 현량과에 첫손으로 천거되었지만 사양하고 송도 화담 가에 서재를 지었다. 벼슬 대신 기(氣)를 붙잡은 사람. 1502년, 열네 살의 책상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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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성 서씨의 이름난 인물
  • 서경덕1489~1546송도의 처사, 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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