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왜란 때 "가물 때의 나막신"이라 큰소리치고 나가 제포의 왜적을 깨뜨린 장무공 황형이 이 집안 사람이다.
황형 黃衡
1459~1520 · 조선 전기 · 무신
"나는 가물 때의 나막신이오" 장마에만 쓰인 장수
황형의 실제 일생
황형(1459~1520)은 선공감정 황예헌의 아들이다. 1480년 무과에 급제했고 1486년 무과 중시에 장원했다. 1487년 어머니의 병으로 말미를 받고도 기생의 집에 머물렀다는 탄핵으로 직첩을 빼앗겼다가 다시 쓰였다. 1491년 허종의 북정에 장수로 따라갔고, 혜산진 첨사·의주 목사·함경북도 절도사를 지냈으며, 연산군의 사냥 대장으로 신임을 얻어 자헌대부에 올랐다. 1510년 삼포왜란 때 경상좌도 방어사로 제포의 왜적을 깨뜨려 유담년과 함께 으뜸 공에 올랐다. 1512년 함경도 순변사, 1517년 공조 판서가 되었다. 탐욕으로 거듭 탄핵을 받았으나 임금은 변방에 그만한 장수가 없다며 쓰기를 그치지 않았다. 시호는 장무(莊武)이다.
활 잘 쏜다는 소문이 임금 귀에까지 들어간 무인. 두만강 너머 여진을 쫓고, 연산군의 사냥을 몰고, 탐욕으로 거듭 벼슬을 잃었다. 1510년 삼포의 왜인들이 들고일어나자 집에 있던 그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큰소리쳤다. "나는 가물 때의 나막신 같아서 장마철이나 당해야 쓰일 뿐이다." 1484년, 선정전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