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성씨 昌寧 成氏

옛 경상도 창녕오늘의 경상남도 창녕군시조 성인보(成仁輔)

사육신 성삼문과 그 아버지 성승의 집안. 1456년 한 해에 성승의 아들 넷과 손자 셋이 모두 죽었다.

성삼문 成三問

1418~1456 · 조선 전기 · 문신

세 번 물어 태어난 학사, 끝까지 묻다

성삼문의 실제 일생

성삼문(1418~1456)은 도총관 성승의 아들로 홍주 외가에서 태어났다. 1438년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학사가 되었고, 신숙주와 함께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음운을 물으며 훈민정음과 『동국정운』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 계유정난 뒤 공신에 녹훈되자 사양했으나 허락받지 못했고, 1454년 집현전 부제학, 세조 즉위 뒤 승지가 되었다. 1456년 명 사신 연회에서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 했으나, 별운검이 폐지되어 거사를 미루던 중 김질의 고변으로 붙잡혀 그해 6월 처형되었다. 1691년 관작이 회복되었고 1758년 충문(忠文)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삼문」 encykorea.aks.ac.kr/Article/E002936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육신」 encykorea.aks.ac.kr/Article/E0025865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승」 encykorea.aks.ac.kr/Article/E0029402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종복위운동」 encykorea.aks.ac.kr/Article/E0013663
  5. 세조실록 2년(1456) 6월

태어날 때 하늘이 "낳았느냐" 하고 세 번 물었다 하여 이름이 삼문(三問)이 되었다고 전한다. 세종의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의 소리를 맞추러 요동을 오갔고, 세종이 남긴 어린 손자를 지키려다 국문장에 섰다. 거사를 미룰 것인가, 칼을 뽑을 것인가. 당신이 고른다.

성삼문으로 살아 보기
창녕 성씨의 이름난 인물
  • 성삼문1418~1456사육신
  • 성혼1535~1598우계, 서인의 스승
  • 성현1439~1504용재총화의 저자

족보로그는 조선왕조실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같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가문 점수는 게임 점수일 뿐, 실제 집안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