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1501~1572)은 삼가현 토골에서 승문원 판교 조언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과거에 실패한 뒤 처사로 살며 김해 산해정, 삼가 뇌룡사에서 학문을 닦았다. 1538년 헌릉참봉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응하지 않았고, 1555년 단성현감에 제수되자 사직소에서 문정왕후를 "깊은 궁궐의 한 과부"라 하며 척신 정치를 통렬히 비판했다. 1561년 지리산 아래 덕산에 산천재를 짓고 제자를 길렀으니, 정인홍·김우옹·정구·곽재우 등이 그 문하다. 경(敬)과 의(義)를 학문의 바탕으로 삼고 실천을 중시했다. 1572년 72세로 세상을 떠났고,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칼에는 "안으로 밝히는 것은 경(敬), 밖으로 끊는 것은 의(義)"라 새기고, 허리에는 늘 깨어 있으라는 방울을 찼다. 조정이 열 번 넘게 벼슬을 내렸고 그는 끝내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대신 상소 한 장으로 조정을 뒤집었다. 이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의 일생이다. 『성리대전』을 펼치던 날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