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百濟

성씨와 본관이 자리 잡기 전, 백제를 산 사람들. 본관 대신 나라 이름으로 찾는다.

근초고왕 近肖古王

?~375 · 삼국시대 · 왕족

평양성에서 고구려 왕을 꺾고 백제의 전성기를 열다

근초고왕의 실제 일생

근초고왕(?~375)은 백제 제13대 왕으로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346년 계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고, 이듬해 왕비의 친척 진정을 조정좌평으로 삼는 등 진씨 가문을 왕실의 뒷배로 삼았다. 366년과 368년 신라에 사신과 좋은 말 두 필을 보내 화친했다.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2만 군사로 치양에 오자 태자 근구수를 보내 크게 깨뜨렸고, 그해 겨울 한수 남쪽에서 누런 깃발을 든 대열병을 했다. 371년 패하에서 고구려군을 매복으로 물리친 뒤 겨울에 태자와 정병 3만으로 평양성을 쳤고,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같은 해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 372년 동진에 사신을 보내 진동장군 영낙랑태수로 책봉되었다. 남쪽으로 마한의 남은 세력을 복속시킨 것으로 보며, 왜에 보낸 칠지도도 그의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375년 고구려에 수곡성을 빼앗긴 뒤 흉년으로 보복하지 못하고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박사 고흥이 이때 처음 『서기』를 지었다고 전한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근초고왕」 encykorea.aks.ac.kr/Article/E000746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지도」 encykorea.aks.ac.kr/Article/E0058547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기」 encykorea.aks.ac.kr/Article/E0027656
  4. 위키백과 「근초고왕」 ko.wikipedia.org/wiki/근초고왕
  5.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 근초고왕·근구수왕, 권3 신라본기 내물 이사금 18년 zh.wikisource.org/wiki/三國史記/卷24

비류왕의 둘째 아들. 몸집이 크고 생김새가 남달랐으며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고 『삼국사기』는 적었다. 왕이 되어 신라와 형제를 맺고, 바다 건너 동진과 왜에 길을 내고, 평양성 아래에서 고구려 왕을 쓰러뜨렸다. 백제가 가장 넓었던 서른 해를 당신이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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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階伯

?~660 · 삼국시대 · 무신

오천 결사대로 황산벌을 지킨 달솔

계백의 실제 일생

계백(?~660)은 백제 말기의 장수로 관등은 달솔이었다. 660년 당의 소정방이 13만 군사로 바다를 건너오고 신라의 김유신이 정병 5만으로 탄현을 넘어오자, 의자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아 결사대 5천을 이끌고 황산벌로 나가게 했다. 그는 험한 곳을 먼저 차지해 세 군데에 진을 치고, 월나라 구천이 5천으로 오나라 70만을 깨뜨린 일을 들어 군사들을 북돋웠다. 7월 9일 신라군과 네 번 싸워 네 번 다 이겼으나, 신라의 반굴과 관창이 잇따라 목숨을 던지자 신라군의 기세가 올랐고, 결국 군사가 적어 힘이 다해 싸우다 죽었다.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 등 스무여 명은 사로잡혔다. 사흘 뒤 사비성이 에워싸였고 그달 18일 의자왕이 항복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를 충절의 본보기로 여겨 부여 의열사와 연산 충곡서원에 모셨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계백」 encykorea.aks.ac.kr/Article/E0003142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계백 장군 유적전승지」 encykorea.aks.ac.kr/Article/E0003144
  3. 위키백과 「계백」 ko.wikipedia.org/wiki/계백
  4. 『삼국사기』 권47 열전 계백·관창 zh.wikisource.org/wiki/三國史記/卷47
  5.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 zh.wikisource.org/wiki/三國史記/卷28

백제 의자왕 때의 달솔.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기록에 남은 것은 660년 7월 9일 하루, 황산벌에서 결사대 5천으로 신라군 5만을 네 번 물리친 날뿐이다. 그날에 이르기까지의 스무 해는 당신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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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義慈王

?~660 · 삼국시대 · 왕족

해동증자에서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의자왕의 실제 일생

의자왕(?~660)은 백제 제31대 왕으로 무왕의 맏아들이다. 632년 태자가 되었고, 어버이를 효로 섬기고 형제와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641년 즉위했고, 이듬해 왕족 교기와 내좌평 기미 등 40여 명이 섬으로 쫓겨났다고 『일본서기』는 적었다. 642년 몸소 신라의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고 장군 윤충을 보내 대야성을 함락했으며,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를 압박했다. 656년 극간하던 좌평 성충을 옥에 가두었고 성충은 옥에서 죽었다. 660년 당 소정방의 13만과 신라 김유신의 5만이 쳐들어와 황산벌과 기벌포에서 잇달아 지자 7월 13일 웅진성으로 피했다가 18일 항복했다. 9월 왕족과 신하, 백성 1만 2천여 명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고, 그해 낙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 북망산에 묻혔다. 낙화암의 삼천 궁녀 이야기는 후대에 부풀려진 것으로, 삼천이라는 숫자는 조선 초 김흔의 시에서 처음 보인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자왕」 encykorea.aks.ac.kr/Article/E0043357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식진」 encykorea.aks.ac.kr/Article/E0071949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교기」 encykorea.aks.ac.kr/Article/E0005445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낙화암」 encykorea.aks.ac.kr/Article/E0011673
  5. 위키백과 「의자왕」 ko.wikipedia.org/wiki/의자왕
  6. 위키백과 「낙화암」 ko.wikipedia.org/wiki/낙화암
  7.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 zh.wikisource.org/wiki/三國史記/卷28

무왕의 맏아들. 어버이를 효로 섬기고 형제와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 왕이 된 이듬해 신라의 성 마흔을 빼앗았고, 열여덟 해 뒤 당과 신라의 군대 앞에서 나라를 잃었다. 그를 바꾼 것이 세월인지, 그를 적은 붓인지는 당신이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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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이름난 인물
  • 근초고왕?~375백제의 전성기를 연 왕
  • 계백?~660황산벌의 결사대 장군
  • 의자왕?~660백제의 마지막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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