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 조씨 白川 趙氏

옛 황해도 배천오늘의 황해남도 배천군

황해도 배천(白川)을 본관으로 하는 조씨. 고려 현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조지린을 시조로 삼는다.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칠백 의병과 함께 전사한 중봉 조헌이 이 집안 사람이다.

조헌 趙憲

1544~1592 · 조선 중기 · 의병

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 엎드린 선비, 금산의 칠백

조헌의 실제 일생

조헌(1544~1592)은 본관이 배천이고 자는 여식, 호는 중봉·도원·후율이며, 경기도 김포에서 났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1567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교서관 정자 등을 지내며 궁중의 불사봉향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동환봉사」를 지었다. 통진현감 때 내수사 노비의 횡포를 다스리다 죽게 한 일로 부평에 귀양 갔다가 풀려났고, 보은현감·공주목 제독을 지냈다. 1587년 정여립을 논박하는 등 여러 차례 상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589년 지부상소로 길주 영동역에 유배되었다가 그해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풀려났다. 1591년 일본 사신을 베라고 대궐 문밖에서 사흘 동안 지부상소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함께 청주성을 되찾았고, 8월 18일 남은 칠백 의병으로 금산의 왜군과 싸우다 영규 등과 함께 모두 전사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며 1883년 문묘에 배향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헌」 encykorea.aks.ac.kr/Article/E0052754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규」 encykorea.aks.ac.kr/Article/E0037243
  3. 위키백과 「조헌」 ko.wikipedia.org/wiki/조헌
  4. 위키백과 「금산 전투」 ko.wikipedia.org/wiki/금산_전투
  5. 서울신문 「칠백의총에 서린 기개」(2017) m.seoul.co.kr/news/2017/03/11/20170311017002

김포의 가난한 선비 집 아들. 이이와 성혼에게 배웠고, 임금이 듣기 싫어하는 상소를 올리다 귀양도 갔다. 1591년 일본 사신이 오자 도끼를 지니고 대궐 문밖에 엎드려 그 목을 베라고 했다. 이듬해 전쟁이 왔다.

조헌으로 살아 보기
배천 조씨의 이름난 인물
  • 조헌1544~1592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 엎드린 선비, 금산의 칠백
  • 조반1341~1401조선 개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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