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은 장영실을 아산의 인물로 올려 두었다. 동래현 관노에서 종3품 대호군까지 오른 사람이다.
장영실 蔣英實
생몰년 미상 · 조선 전기 · 장인
관노에서 대호군으로, 그리고 실록에서 사라지다
장영실의 실제 일생
장영실은 동래현의 관노였다. 세종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원나라 소주·항주 사람, 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솜씨가 남달라 태종이 보호했다. 중국에 파견되어 천문 기기를 익혔고, 면천되어 상의원 별좌가 된 뒤 1424년 물시계를 만들어 정5품 행사직에 올랐다. 1432년부터 이천과 함께 간의·혼천의 같은 천문 기기를 만들었고, 1433년 자격궁루를 만든 공으로 호군이 되었으며, 앙부일구와 1438년 흠경각 옥루 제작에 참여해 대호군에 이르렀다. 1442년 그가 감독해 만든 임금의 가마 안여가 부서지자 불경죄로 곤장을 맞고 직첩을 빼앗겼다. 그 뒤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