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安東 金氏

옛 경상도 안동오늘의 경상북도 안동시

병자호란 때 형 김상용은 강화도에서 순절했고, 아우 김상헌은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화친을 반대했다. 김상헌의 후손에서 재상과 판서가 줄지어 나왔다.

구안동·신안동, 서로 다른 계통

안동 김씨는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구안동과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안동을 구분합니다. 목록은 본관 이름으로 함께 찾도록 묶었으며, 두 계통을 하나의 가계로 뜻하지 않습니다. 김시민은 구안동, 김상헌·김조순은 신안동으로 소개합니다.

FamilySearch · 안동김씨

김상헌 金尙憲

1570~1652 · 조선 중기 · 문신

국서를 찢은 사람, 끝내 무릎 꿇지 않다

김상헌의 실제 일생

김상헌(1570~1652)은 돈녕부도정 김극효의 아들로, 세 살 때 큰아버지 김대효의 양자가 되었다. 1596년 문과에 급제했고, 정인홍을 탄핵했다가 밀려났으며 1613년 파직되어 안동 풍산으로 내려갔다. 인조반정 뒤 대사간·대사헌·판서를 지냈고, 1636년 병자호란 때 예조판서로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화친을 반대했다. 항복 뒤 안동으로 물러났다가 청의 출병 요구에 반대한 일로 1640년 심양에 압송되어 1645년에 돌아왔다. 효종이 대로(大老)로 받들었고, 1652년 세상을 떠나 뒤에 효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상헌」 encykorea.aks.ac.kr/Article/E000938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명길」 encykorea.aks.ac.kr/Article/E0057284
  3. 위키백과 「김상헌」「병자호란」
  4. 인조실록 15년(1637) 정월, 『청음집』·『지천집』·『연려실기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우자고 외친 예조판서. 항복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고 전하며, 일흔의 나이에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서도 굽히지 않았다. 그 감옥에는 국서를 쓴 최명길이 함께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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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金玉均

1851~1894 · 조선 말기 · 문신

알성시 장원, 사흘 만에 끝난 갑신년의 새 나라

김옥균의 실제 일생

김옥균(1851~1894)은 안동 김씨 김병태의 맏아들로 충청도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당숙 김병기에게 입양되었다. 1872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했고, 박규수의 문하에서 개화사상을 받아들여 홍영식·서광범·박영효 등과 개화당을 이루었다. 1881년 말부터 일본을 시찰했고, 1883~1884년 일본에서 차관 교섭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낙성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켜 새 정부를 세웠으나 청군의 공격으로 사흘 만에 무너졌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 정부에 의해 오가사와라섬과 홋카이도로 보내지는 등 냉대를 받다가 1894년 3월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되었다. 갑오개혁 뒤 복권되었고, 1910년 충달(忠達)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옥균」 encykorea.aks.ac.kr/Article/E0009911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주 김옥균 생가터」 encykorea.aks.ac.kr/Article/E0009912
  3. 김옥균 『갑신일록』
  4. 위키백과 「김옥균」「갑신정변」「홍종우」

김병태의 맏아들로 태어나 일곱 살에 당숙 김병기의 양자가 되었다. 스물두 살에 알성시 장원.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지구의를 돌려 본 청년은 일본을 다녀온 뒤 조선을 통째로 바꾸고 싶어 했다. 1884년 겨울, 그는 우정국 낙성 잔치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새 정부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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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의 이름난 인물
  • 김상헌1570~1652가노라 삼각산아(신안동)
  • 김시민1554~1592진주대첩의 목사(구안동)
  • 김조순1765~1832세도정치의 시작(신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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